[끝나지 않는 여행 이야기] 0004 / 비행기 좌석의 심리학, A열에 앉을까 K열에 앉을까
같은 이코노미, 같은 창가 자리여도 쉽사리 자리를 결정하지 못한다. 뭐 그리 생각할 게 많은지, 사전 좌석 지정 페이지에서 몇 시간을 머물며 이리 저리 자리를 옮겨 본다. 진짜 비행기 자리에 앉아 보듯이. 이리 앉아 보고 저리 앉아 보고 한참을 고민해 수 시간 나의 여행을 책임질 단 하나의 좌석을 선택하고서야, 여행을 준비하는 많은 단계 중의 고작 하나를 넘긴다.
다소 답답하고 어찌 보면 찌질할지도 모르는 이런 행위들은 사실 이유가 있 -다고 정당화 하고 싶다- 으니 들어봐 주시길. 그것은 바로 하늘 위에서 밖에 볼 수 없는 몇몇 발 아래 풍경을 보기 위함이다. 인천공항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작은 것에서부터, 내가 사는 도시 서울, 또는 내가 곧 여행할 도시 어드메를 위에서 훑어보고 싶음. 이건 나만 갖는 궁금증인가. 그렇다면 나 답답하고 찌질한 것 맞는 것 같으니 마음껏 욕하길!
동쪽 하늘로 떠나는 여행이라면, 발 아래 서울을 볼 수 있는 여행.
내가 사는 동네, 옛 왕이 살았던 동네, 구름안개 둘러싼 북한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여행.
왼쪽 창가, A열에 앉아야 볼 수 있는 선물이다.
덧붙여 도쿄로 간다면 역시 왼쪽 자리에 앉아야 발 아래 후지산을 볼 수 있단다.
반대로 밤 비행으로 돌아온다면 오른쪽에 앉아 발 아래 서울 야경을 볼 것을 강추, 또 강추한다.
어깨 너머로 밖에 보지 못했음이 아직도 눈물 나도록 아쉬우니.
첫 여행. 첫 비행.
내가 밟을 첫 도시 런던은 오른쪽 발 아래에 있었다.
세번째 여행이자 두번째 마주하는 유럽. 발 아래 붉은 땅은 해를 등 지고 있어서 더 진하디 진한 붉은 빛이었다.
프라하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체코항공의 오른쪽 날개 위에서, 그 붉은 남국의 땅을 보다.
오른쪽, F열이었다.
다섯번째 여행으로 밟았던 도시.
일곱번째 여행의 기착지.
여덟번째 여행에서의 짧은 마주침.
이제는 익숙함이 된 도시. 색깔 많은 침사추이는 오른쪽 발 아래에 있었다.
일곱번째 여행의 목적지, 타이페이. 그 익숙한 듯 새로운 풍경은 오른쪽 아래로 보았다.
타이페이의 타오위엔 국제공항은 도시의 왼쪽에 있으므로.
밤새 날아 남반구로, 호주로, 시드니로.
첫 경험의 A380 커다란 창문 너머로 일요일 아침의 시드니가 한가득 들어온다.
검푸른 한새벽이었다가 별안간 비행기를 뒤 덮은 아침 볕, 그에 놀란 수백명 동행자들의 환호성을 어찌 잊을 수 있을지.
이 사진은 분명 더럽게도 못 찍은 사진이나, 그런 낱낱의 이야기들이 가뜩 담겨있기에 내겐 소중한 여행의 한 순간.
A열, 왼쪽 창가에 앉아야 발 아래 시드니를 볼 수 있다.
그리고 이렇듯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해를 등져야 볼 수 있고, 또 담을 수 있다.
인천을 떠나 남쪽으로 가는 아침 비행에서 대체로 -서쪽 하늘을 볼 수 있는- 오른쪽에 앉는 이유는 바로 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보기 위함이다.
반대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비행이라면 동쪽 하늘로 눈을 돌린다.
이 푸르디 푸른 하늘도 해를 등진 동남쪽 하늘이었다.
여행 끄트머리의 감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주는 빛이 있으려나.
해가 막 하루 일을 마치는 시간, 당연하게도 서쪽 하늘을 보아야 한다.
다섯번째 여행, 싱가포르에서 홍콩으로 돌아오는 비행.
뜨거웠던 남국 싱가포르의 서쪽 하늘은 이렇게 미치도록 찬란한 그 마지막을 보여주었다.